퀴어 당사자에게 보험과 금융은 종종 '내 삶이 설계 단계에서 빠져 있다'는 경험으로 다가온다. 비혼이라는 선택은 "혹시 결혼할지 모른다"는 말로 미뤄지고, 동성 파트너는 수익자 목록에서 지워지며, 어떤 보장은 '기혼 증명' 앞에서 멈춘다. 보험·투자·손해사정 등 각 분야의 현직 금융인들이 모여 이 사각지대를 다루겠다고 나선 곳이 '차별없는 금융연구소(차금융)'다. 대표 김주원, 이사 신수림 그리고 새 동료 백승덕을 만났다.

먼저 한 분씩 소개 부탁드려요. 어쩌다 이 일을, 또 세 분이 어떻게 함께하게 됐는지도 궁금해요.

신수림 저는 사람을 참 좋아하고 정이 많아서 사람을 향하다보니까 전공도 사회복지 분야로 갔어요. 스스로 사회복지를 선택한 이유가 뭘까 오래 고민했는데 결국 사회복지의 본질은 '삶의 질 향상'이더라고요. 사회복지학 석사까지 마치고 교직원으로 일했고 이후에는 통신업 휴대폰 매장을 운영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퀴어 모임에서 10년 만에 정말 우연히 중학교 동창을 만났는데, 그게 주원님이었어요. 어른이 되어서야 서로 퀴어인 걸 알게 되어 괜히 더 반갑고 항상 응원하는 친구로 지내다가 어느 날 주원님이 퀴어 당사자와 활동가를 위한 보험설계사로서 새로운 일을 시작해보려 한다며 다짐을 나누러 왔죠. 처음 1년간은 주원님이 일하는 모습만 지켜보다가, 누군가 갑작스럽게 다치거나 크게 아파서 삶의 질이 가장 떨어질 때 필요한 게 보험이잖아요. 그 삶의 질을 지켜주는 일이라면 제 가치관과 이어진다고 생각해서 이후에 저도 직업을 완전히 전환했어요. 든든한 퀴어 친구이자 이제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동료로, 각자 다른 조각들이 퍼즐처럼 맞아떨어진 거죠.

김주원 저는 원래 평화활동가이자 교육 분야 공익활동가로 7년 정도 일을 했는데 금융서비스업으로 전향한 지는 3년입니다. 연구소의 출발점을 직접 기획했고 대표로서 우리의 활동 방향성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고 있고요. 저희 연구소 이름은 정말 오랜 회의 끝에 가칭이던 '차별없는 금융연구소'로 정해졌어요. 가장 직관적이고, 아직은 이 이름이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했거든요. 수림님은 초창기부터 개소 준비를 함께한 이사이고, 승덕님은 저희 활동을 지켜보다 직접 찾아와 합류해 주신 귀한 동료예요. 오늘 자리한 세 사람 외에 멤버가 세 명 더 있고, 소속 금융법인과 운영부서의 동료들도 함께해요.

백승덕 저의 경우 대체복무 관련 연구를 해 오다가, 어머니가 오래 보험 일을 하신 인연으로 이 업에 들어섰어요. 솔직히 처음엔 돈을 벌려고 시작했고 좌충우돌도, 고립감도 많았죠. 대안적 청소년진로교육센터인 하자센터에서도 활동하다가 주원님의 교육활동 분야와 겹치는 지인들이 있어 주원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원님이 보험·금융업계에서 고민하는 지점에 공감해서, 저도 함께하고 싶어 합류했어요. 사실 오늘이 연구소 소속으로는 제 첫 공개 자리예요.

차별없는 금융연구소를 모르는 사람에게 한 문장으로 소개한다면요?

김주원 저희가 늘 마음에 두는 말이 '약관 너머의 삶을 들여다본다'예요. 보험이나 금융상품은 결국 증권과 약관으로 정리되지만, 그 약관이 미처 담지 못한 삶이 사람마다 있거든요. 그래서 누구나 안전하게 자기 삶을 이야기하며 상담받을 수 있는 공간이자 동행이고 싶어요. 보험이라고 하면 흔히 실비나 암보험을 먼저 떠올리시는데, 저희는 연금이나 투자, 절세까지 생애 전반의 금융을 함께 봐요. 그 안에서 보험은 상품 하나가 아니라 소득과 생애 계획에 따라 설계하는 장기적인 금융 계약이죠. 그래서 '보험'이 아니라 '금융' 연구소예요.

백승덕 저에게 보험은 '위험을 줄여주지만 그 자체로 위험한 줄타기' 같아요. 사보험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공공성을 해치는 게 아닐까 고민이 크거든요. 차별없는 금융연구소가 연구소를 표방하는 건 그래서 반가웠어요. 상품 판매 방법만이 아니라 이 상품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도 같이 고민할 수 있으니까요. 그 고민을 풀어준 게, 보험금을 대신 청구할 대리인을 미리 지정해 둘 수 있는 제도였어요. 보험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전망이 되기도 하는데 그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보통 법적 가정으로만 한정돼요. 그 경계를 조금이라도 넓혀 관계를 인정받게 하는 일에서 정성을 느꼈어요.

동성 파트너 수익자 지정이나 아웃팅 위험처럼, 잘 모르는데 실제로는 큰 벽이 되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어떻게 풀어가세요?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요.

신수림 최근에 상담을 신청해주신 어느 비혼 여성 고객님은 보험에 대해 아주 많이 공부하시고 병원 이력이 남지 않게 아픈 것도 참아가며 신중하게 준비하던 분이었어요. 여러 설계사에게 비혼이라고 분명히 말해도 "그래도 나중 일은 모르죠, 혹시 결혼하실지도 모르잖아요"라는 답이 돌아왔대요. 스스로 계획한 삶의 방향성이 무시되는 거죠. 그분은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상담을 거치고 나서야 마음을 정하셨어요. 같은 상품이라도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선택을 가른다는 걸 배운 사례예요.

또 하나는 저 자신이에요.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나중에 임신·출산을 계획 중인데, 제가 가입한 보험 중에서 난임 진단비·치료비 보장을 실제로 활용하려면 '기혼 증명서'를 제출해야 작동하도록 약관이 짜여 있더라고요. 처음부터 법적인 '기혼자'와 출산을 하려는 사람의 범위를 넓게 생각하지 않고 만든 거죠. 나중에 이 보장을 활용하고 청구할 때 어떤 케이스가 될지, 새롭게 시도하고 넓혀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김주원 사실 제도도 조금씩 변화하고 움직이고 있어요. 2024년 대법원에서 동성부부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판결이 있었죠. 매년 서류를 인정받는 절차는 여전히 까다롭지만요. 저희가 다루는 사례도 여기 닿아 있어요. 결혼 관계와 다르지 않은 마음으로 함께 사는 분들이 서로를 보험금 수익자로 지정해 두는 일, 그게 가능한 보험사와 필요한 서류를 정리하는 일이 하나예요. 그리고 그와는 별개로, 혈연 가족과의 상속 분쟁에 대비해 협력 변호사와 공증 유언장을 미리 준비하는 일까지 함께 봐요.

관계의 존중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을 들여다보기에, 상담은 작은 데서 시작해요. 법적 성명 대신 어떻게 불러드리면 편한지 호칭부터 여쭙고, 전산상으로는 성별이 남녀로만 나뉘지만 상담 보고서엔 고객님 본인이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대로 성별 표기를 적거나 아예 항목을 비우기도 해요. 결과보다 그 과정에서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경험'을 드리고 싶어요.

올해 퀴퍼 부스를 이어서 운영한다고 들었어요. 부스를 진행하는 이유와, 미리보기 소개를 부탁드려요.

김주원 지난 4월에는 대전퀴어문화축제 부스에 함께했고, 이번 서울퀴어문화축제에는 기업 파트너십 부스로 참여해요. '보험업과 금융업계에도 퀴어 당사자인 현직자들이 뜻을 모아 일하고 있다'는 걸 알리고 연대를 전하는 자리예요. 올해는 타로카드 이벤트를 준비했는데, 생활동반자법과 수익자 지정 권리에 대한 지지 서명을 같이 모아요. 대전에서 300명 이상 서명해 주셨어요. 서울은 규모가 큰 만큼 더 많은 분들과 힘을 모아 국회, 금융감독원, 보험협회 등에 전달하려 해요. 법 제도와 맞물려 사적 보험과 금융 서비스업에서도 진지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신수림 이번 서명이 저에겐 단순한 청원이 아니에요. 각자의 자리에서 외롭거나 자신을 드러내기 어려웠던 사람들이 그날 다 모이잖아요. 한 사람 한 사람 삶의 이야기를 모아주는 역할이라 생각해요. '우리가 지금 모였고, 우리는 꽤 많다'는 의미를 전하고 싶어요. 찾아오시는 분들껜 타로카드와 환대의 메시지를 응원처럼 건네고요.

새 팀원을 찾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어떤 분이면 좋을까요?

신수림 각자가 살아온 삶이 어떻든, 주변과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갖고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어요. 퀴어 당사자든 아니든 정체성은 상관없어요. 스펙이나 정체성보다 중요한 건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과 일을 향한 진정성이라고 믿어요.

김주원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고 내 일에 책임감을 가진 분이라면 언제든 환영해요. 누구나 시작할 수 있지만 아무나 지속하기는 어려울 수 있어요. 그래서 조직 문화나 어떤 동료들과 일하는지가 더욱 중요하고요. 그래서 퀴어 프렌들리하고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일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요.

백승덕 누군가의 삶을 진지하게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요. 그런 태도가 결국 관계로, 신뢰로 이어지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백승덕 차별없는 금융연구소와 함께하고 있다는 걸 공개적으로 알리고 인사드릴 수 있어 좋았습니다. 첫 자리라 더욱 뜻깊네요.

신수림 제가 하는 모든 활동의 바탕에는 결국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삶을 지키고, 다양한 서사를 연결하는 이 길에 뜻을 같이할 동료가 있다면 참 든든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주원 보험을 다루고 금융업계에서 일하다보면 ‘이걸 진작 알았더라면’ 하는 수많은 금융 정보들을 접해요. 살아가면서 중요하고 장기적인 금융계약에 대해 신중하고 지혜롭게 계획을 세울 수 있다면 좋겠어요. 나의 일상과 미래를 지키기 위한 긴 호흡의 약속이니까요. 혼자서 그 계획과 기준을 세우기 어려울 땐 전문가와 함께 그 길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차별없는 금융연구소는 무료 재무·보험상담, 단체 금융교육 세미나 등을 운영한다. 문의는 연구소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받는다. chalab.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