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총리, 동성커플에 공식 사과…“수년간의 거부와 굴욕” 인정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가 5월 12일 동성커플에게 “수년간의 거부와 굴욕”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타 EU 회원국에서 합법적으로 이루어진 동성 혼인을 인정하겠다고 밝혔다. 유럽연합 회원국 정상이 성소수자에게 공식 사과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유럽 내 성소수자 권리 확장의 흐름에서 주목할 만한 장면이다.

판결이 먼저였다

이번 발표는 사법 판결에 따른 것이다. 2025년 11월 유럽연합 사법재판소는 EU 회원국이 다른 회원국에서 합법적으로 체결된 동성 혼인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올해 3월에는 폴란드 대법원도 동일한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투스크 정부는 이 판결들을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공식적으로 표명한 것이다.

보수적 역사의 무게

폴란드는 그간 유럽연합 회원국 중 성소수자 권리에 가장 적대적인 국가 중 하나로 꼽혀왔다. 전임 법과정의당 정부 시절에는 이른바 ‘LGBT 이데올로기 없는 구역’을 선포한 지방자치단체가 100곳을 넘기도 했다. 유럽연합은 이를 이유로 폴란드에 대한 EU 기금 지원을 일시 중단하기도 했다.

투스크 총리는 “이것은 인간의 존엄성, 행복권, 국가로부터 평등하게 대우받을 권리의 문제”라며 “폴란드 국가는 오랫동안 이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계도 분명하다

이번 조치는 폴란드 국내법상 동성혼을 새롭게 허용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EU 국가에서 체결된 혼인을 인정하는 수준에 그친다. 폴란드 내에서 동성커플이 혼인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완전한 법적 평등까지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이번 사과와 이행 약속은 폴란드의 정치적 지형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법이 바뀌기 전에 지도자의 언어가 먼저 바뀌었다. 그 언어가 법으로 이어지는 데 얼마나 걸릴지, 폴란드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