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는 납작하지 않다…이반지하의 ‘퀴어, 은혜를 모르는’을 보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행위는 그 사람의 세계를 잠시 엿볼 수 있는 특권을 얻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이반지하의 우프 토크쇼도 그러했다.

토크쇼 제목은 ‘퀴어, 은혜를 모르는’이었다. 이반지하의 팬으로서 나는 별다른 맥락 없이 예매했다. 이반지하가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 전시에 참여한다는 것, 그 자리에서 전시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 정도만 알았다. 있을만한 사람이 있는 전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전시도 보지 않은 채 토크쇼에 참석했다.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이반지하는 유쾌하게, 그러나 날카롭게 이야기했다. 작가의 맥락을 무시한 채 ‘퀴어’라는 이유만으로 섭외하는 것. 소수자에게 토큰을 하나씩만 내주는 것, 혹은 아예 주지 않는 것. 주최 측의 얄팍한 기획과 태도.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 참여하지 못한 작가, 섭외됐다가 취소된 사람들의 목소리가 토크쇼를 채웠다. 각각의 이야기는 제각각이었고, 불온하기도 했다.

놀랍지도 않은 일에 또 한번 실망하는 감각은 익숙했다. 그러나 이반지하와 우프는 말했다. 퀴어로 살아간다는 건 타인의 오독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 해석당하는 것에 익숙해져선 안 된다고. 퀴어라는 이유로 그런 것들을 기꺼이 감내하지 않아도 된다고.

우리의 레이어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깊고 다채롭다. 각각의 층위 속에는 또 각각의 삶과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퀴어 예술이란 무엇인가, 퀴어 전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런 질문들은 이반지하의 팬이 아니었다면, 생각 없이 토크쇼를 예매하는 짓을 하지 않았다면 영영 하지 못했을 것이다.

퀴어는 납작하지 않다. 그것을 다시 한번 선명하게 알게 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