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5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3-2부(부장판사 김소영·장창국·문종철)가 내린 판결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동성 커플의 생활공동체는 현행법상 '사실혼'으로 성립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법률상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으로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 결론을 근거로, 원고의 배우자와 부정행위를 해 두 사람의 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한 제3자에게 위자료 1천만원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청구를 기각했던 1심을 뒤집은 결과다.

사건 — 6년의 생활, 석 달의 외도

원고와 그 배우자 A는 여성 동성 커플이다. 두 사람은 2018년 무렵 교제를 시작해 2019년부터 함께 살았다. 결혼식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양가 가족에게 관계를 인정받았고, 각자의 급여로 공동생활비와 부모님 용돈, 대출 이자를 함께 부담하며 한 가정을 이뤘다. 재판부는 적어도 2023년 6월 무렵에는 두 사람이 단순한 연인을 넘어 사실혼과 유사한 생활공동체를 형성한 것으로 봤다.

관계는 2024년 6월 A가 직장에서 만난 제3자(피고)와 교제를 시작하면서 흔들렸다. 교제 석 달 만에 A는 원고에게 이별을 통보했고, 6년 가까이 이어진 생활공동체는 그렇게 끝났다. 원고는 관계 파탄을 초래한 제3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심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주목할 것은 결론이 아니라 거기에 이르는 길이다.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동성혼이나 동성 사실혼의 '성립'이라는 정면 승부를 의도적으로 피한다. 대신 세 갈래의 헌법·민법적 논거를 정교하게 엮어, 종전 판례와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보호의 영역을 넓히는 논증을 짜냈다.

첫째 기둥 — 행복추구권 (헌법 제10조)

재판부는 먼저 현행법 해석상 동성 간 법률혼이나 사실혼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출발한다. 헌법과 민법이 양성·부부·부(夫)·처(妻) 같은 성구별적 용어로 혼인을 규정하고 있고, 동성혼을 인정할 만한 사회적 합의나 구체적 입법이 아직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곧바로 헌법 제10조를 끌어온다. 누구나 자신의 성정체성에 따라 인격을 형성하고 성적 지향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이루며 그 안에서 삶을 영위할 권리는 인간의 존엄에서 유래하는 근본적 권리이며, 행복추구권의 본질을 이룬다는 것이다.

동성 커플이 혼인의사를 가지고 육체적·정신적·경제적으로 결합하여 법률혼 내지 사실혼관계와 유사한 생활공동체를 형성하는 것 역시 행복추구권에 따라 당연히 인정되는 권리이므로, 동성 커플의 경우에도 이러한 생활공동체 형성에 따른 이익을 보호할 최소한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 판결문 중

여기서 재판부는 성소수자의 인격권을 폭넓게 인정한 대법원 2022년 전원합의체 결정의 취지를 근거로 삼았다.①

둘째 기둥 — 평등권 (헌법 제11조)

두 번째 논거는 형평이다. 재판부는 우리 법이 이미 법률혼이 아닌 사실혼이나 약혼 단계에서도 부정행위로 인한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런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같은 관계를 성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보호에서 배제하는 것은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라는 것이다.

동성의 두 사람 사이에서 주관적으로 혼인의사의 합치가 이루어지고 정신적·육체적 결합을 통한 생활공동체가 형성되어 이성간의 사실혼관계와 실질적인 차이가 없는 경우에도, 그중 일방이나 그와 교제하여 관계의 파탄을 초래한 제3자의 손해배상책임을 일절 인정하지 아니하는 것은 사실혼과 유사한 수준의 생활공동체를 형성한 동성 커플의 행복추구권 내지 평등권을 외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 판결문 중

재판부가 말하는 평등은 절대적 평등이 아니라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는 상대적 평등이며, 이 사안에서는 그 합리적 이유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셋째 기둥 — 명문 규정 없이도 보호되는 이익 (민법 제751조)

세 번째로 재판부는 보호의 실정법적 통로를 확보한다. 어떤 이익이 법적으로 보호받기 위해 반드시 그것을 보호하는 명문 규정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민법 제751조 제1항은 타인에게 정신상 고통을 가한 자의 배상 책임을 폭넓게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재판부는 헌법과 민법의 혼인 규정이 이성 결합을 전제로 한 것은 맞지만, 그것은 이성 간 혼인의 보호 근거로 작용할 뿐 동성 생활공동체에 대한 법적 보호를 완전히 배제하는 규정으로 기능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못 박았다. 동성 생활공동체를 보호 이익으로 인정하는 것이 전통적 혼인이나 가족제도를 해치거나 제3자의 권리를 침해하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핵심 전략 — '성립'과 '보호'의 분리

이 판결의 가장 정교한 지점은 종전 판례와의 관계를 다룬 대목이다. 재판부는 동성 관계를 보호하지 않았던 과거 판결들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호명한다. 동성 남성 커플의 20년 동거를 사실혼으로 인정하지 않은 2004년 인천지법 판결②, 동성 혼인신고 수리 거부를 정당하다고 본 2016년 서울서부지법 결정③, 그리고 동성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차별을 위법으로 본 202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④이 차례로 검토된다.

재판부는 종전 판결들이 모두 동성 간 법률혼·사실혼이 성립하지 않음을 전제로 한 것은 분명하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결정적인 한 발을 내딛는다.

동성간의 법률혼 내지 사실혼관계의 성립을 인정하는 문제와 동성간의 사실혼 유사 생활공동체를 인정하고 그러한 관계를 법률상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으로 평가하는 문제는 서로 다른 국면에서 논의되어야 하는 문제이고, 전자를 부정하는 것이 반드시 후자를 부정하는 것으로 귀결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 판결문 중

이 한 문장의 구분이 판결 전체를 떠받친다. 동성혼의 성립을 인정하지 않는 기존의 벽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그 관계를 보호 이익으로 끌어올리는 논리적 열쇠이기 때문이다. 이 분리 위에서 재판부는 부정행위의 불법행위 성립을 도출한다. 동성 두 사람이 혼인 의사의 합치와 결합을 토대로 생활공동체를 형성했다면 서로 그 공동체 유지를 위한 협력의무와 성적 성실의무를 부담하며, 제3자가 이를 알면서 일방과 부정행위를 해 공동체를 파탄에 이르게 했다면 보호 가치 있는 이익을 침해한 불법행위가 된다는 것이다.⑤

각주가 드러낸 재판부의 고심

판결문의 각주는 재판부가 이 결론을 얼마나 의식적으로 내렸는지를 보여준다. 재판부는 2001년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대만을 포함한 30여 개국이 동성혼을 법제화했고, 그보다 많은 나라가 생활동반자제도를 두고 있다는 비교법 현황을 길게 정리했다. 동시에 한국갤럽이 2025년 10월 유권자 1,001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동성혼 법제화 찬성이 약 34%, 반대가 약 58%로, 2023년 40%까지 올랐던 찬성률이 오히려 하락 반전했다는 여론 데이터도 적시했다.

이 대비는 의미심장하다. 재판부는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고 여론마저 후퇴하는 국면임을 스스로 확인하면서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다수결의 정치 과정과 별개로 사법이 최소한의 보호를 끌어내야 한다는 결론으로 나아갔다. 기본권 보호는 다수의 동의를 조건으로 하지 않는다는 사법의 본령을 드러낸 셈이다.

취사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 판결을 반가운 진전으로만 읽기 전에, 한 가지를 짚어둘 필요가 있다. 동성 커플은 지금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골라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원고가 제3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관계가 법적으로 보호받을 만한 것으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보호받는 관계가 됐다는 것은 동시에 그 관계에 책임과 구속이 따르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권리와 의무는 본래 한 묶음으로 온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관계는, 나 역시 책임을 지는 관계다.

그동안 동성 커플이 놓여 있던 자리는 그 묶음의 바깥이었다. 혼인이 주는 혜택도, 혼인에 따르는 의무와 불이익도 주어지지 않는 자리, 법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부여하지 않는 자리였다. 법적으로는 그 관계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에 가까웠다. 이번 판결의 의미는 바로 그 빈자리에서 한 걸음 벗어났다는 데 있다. 이제 적어도 관계가 깨졌을 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관계, 법이 그 존재를 인지하는 관계가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싸움은 단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게 해달라는 청원이 아니다. 이성애를 기본값으로 삼아 온 사회에서 동성애자가 하나의 법적 지위와 신분을 획득해 가는 과정의 한 장면이다. 좋은 것만 골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함께 따라오는 '지위' 그 자체를 갖기 위한 싸움이다.

이번 판결이 연 것은 그 지위의 전부가 아니라 입구다. 동성 커플이 자기 관계의 실질을 매번 법정에서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날은, 입법과 헌법재판소가 그 지위를 온전한 제도로 확인할 때 비로소 온다. 그전까지 이런 판결 하나하나는, 아직 채워지지 않은 자리를 향해 내딛는 작은 걸음으로 남는다.

  • 이 리포트는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공개·배포된 판결문(서울중앙지법 2026. 6. 5. 선고 항소심 판결) 원문을 1차 자료로 삼아 작성했다. 판결문 인용은 원문 표현을 따랐으며, 당사자 식별 정보는 비실명 처리했다.

인용 판례

① 대법원 2022. 11. 24.자 2020스616 전원합의체 결정. 성적 지향·성정체성에 따른 인격 형성과 공동체를 이루며 삶을 영위할 권리가 인간의 존엄에서 유래하는 행복추구권의 본질을 이룬다는 취지의 판시를 이 판결이 근거로 인용했다.

② 인천지방법원 2004. 7. 23. 선고 2003드합292 판결. 동성 남성 간 약 20년의 동거관계를 사실혼으로 인정해 법률혼에 준하는 보호를 할 수는 없다며 위자료·재산분할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항소심을 거쳐 2005. 6. 18. 확정.

③ 서울서부지방법원 2016. 5. 25.자 2014호파1842 결정. 동성 간 혼인신고 수리 거부에 대한 불복신청을, 헌법과 민법 해석상 동성혼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각하했다. 재항고심을 거쳐 2016. 12. 15. 확정.

④ 대법원 2024. 7. 18. 선고 2023두36800 전원합의체 판결. 직장가입자의 동성 동반자를 이성 동반자와 달리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인정하지 않은 처분은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로 평등원칙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원심은 서울고등법원 2023. 2. 21. 선고 2022누32797 판결.

⑤ 대법원 2003. 3. 14. 선고 2000다32437 판결. 제3자가 부부의 일방과 부정행위를 함으로써 혼인의 본질에 해당하는 부부공동생활을 침해하거나 그 유지를 방해한 경우 불법행위가 성립한다는 법리. 이번 판결은 이 법리를 동성 간 사실혼 유사 생활공동체에 적용했다.